형제가 연합하여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진정한 자유인

 

자유는 인간의 기본 권리입니다.

자유가 억압당하면 인간의 삶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자유는 육체의 자유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유가 육체의 자유에서 끝난다면 방종도 자유가 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경제의 자유를 한껏 침해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경제의 자유를 힘써 보장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어떤 제도에서도 경제 자유의 왜곡은 피할 길 없습니다.

누구는 부하고 누구는 가난한 데서 자유는 그 위엄을 잃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육체의 자유, 경제의 자유도 아닌 양심의 자유입니다.

대중교통에는 약자를 배려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해당하는 약자도 아닌데 그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다면

행동의 자유를 내세울 수 있으나, 양심의 자유는 숨어 있어야 합니다.

 

내일은 대한민국이 자유를 되찾은 77주년 광복절입니다.

나의 자유는 어떤 자유인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육체도 누구에게 매여있지 않고, 경제도 가난에 눌려 있지 않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양심이 자유로워야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집으로 가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어제 2022년 킹덤미션이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너무나 많은 이야기로 채워진 시간들,

23일 동안 동고동락(?)했던 형제자매들이

마지막 예배 후, 맛난 점심식사를 하고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수고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밤새도록 아름다운 복음을 온 땅에 뿌리다가

집으로 가자라는 말을 남기고 이제 그들은 모두 돌아갔습니다.

부모님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언젠가 우리도 영원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수고가 끝난 후,

아버지께서 이제 오라부르실 때,

집으로 가자를 외치며

아버지 하나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갈 것입니다.

 

눈물도 아픔도 설움도 없는 아버지 집으로 갈 것입니다.

 

안식과 평화와 기쁨이 있는 아버지 집으로 갈 것입니다.


10()를 사는 법()

 

10대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오래된 표현이지만 아직도 유효한 표현인데 흔히 청소년 시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또는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라고 부르곤 합니다.

많이들 그러지 않으셨을까 싶은데(just 추측^^) 저의 10대 때

질풍노도가 누그러지고 이유 없는 반항이 꺾이는 데는 적잖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제 새벽에 본 10대는 달랐습니다.

차원 다른 그들을 킹덤미션 파송예배에서 보았습니다.

어제 여러 회중, 다양한 세대 120명이 킹덤미션에 파송받았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청년들도 적잖이 참석하였는데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어제 불쑥 교회 나왔다가 내일 다른 세상에서 노는 10대들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선교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이 오래전부터 이미 서있습니다.

그들은 선교의 다음 세대가 아니라 현재 세대입니다.

그들은 영적 세계에 내일의 주역이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한 삶의 비전과 방향이 분명합니다.

오늘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에스더와 그와 측근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우리 교회와 이 시대의 기독교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10대의 시간을 질풍노도와 반항에 낭비하지 않는 그들에게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친구 이야기

 

많지 않아도/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어도

나에게 친구가 있음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멀리 있어도/ 가만히 이름 불러볼 수 있는

친구가 나에게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내 좋은 친구를 만날 때면/ 웃음마다 봄날 기쁨입니다

보고픈 친구를 생각할 때면/ 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입니다. (친구 이야기/ 조흔파)

 

친구라는 단어만큼 정겨운 단어가 달리 있을까요.

우리 이민자들은 대부분 친구를 멀리 두고 있습니다.

그리움 가운데 친구가 있어도 좋은데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오늘 설교하시는 류동하 목사님은 아주 오랜 신학교 친구입니다.

저보다 한 살밖에 안 많으시지만 언제나 깍듯이 형님이라고 부릅니다.(흑흑)

언제나 만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많은 성경 이야기를 나누었고 장난도 많이 쳤고

헤어지면 늘 그리웠던 친구입니다.

 

신학교 때나 러시아 선교 때나 영국 유학 때나 담임 목회 때나

현재 섬에서 선교하는 때도 한결같이 자기를 먼저 챙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복음을 먼저 생각하고 이 아우도 변함없이 살피는 의리 충만한 친구 형님.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부럽지 않은 친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은 제가 섬기는 강단에서 설교하신다니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우리를 보내신 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제9차 한인세계선교 대회가 잘 마치었습니다.

와싱톤 현장과 뉴욕 교회에서 뜨겁게 함께 해주신 모든 교우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많은 선교사님의 귀한 말씀과 선교 보고도 들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뉴욕으로 오는 길에 말레이시아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내외분과 대화를 했습니다.

중국에서 25년 넘게 사역하시다가 추방되어 지금의 사역지로 옮기신 것입니다.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끝에 제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선교사님, 목회자나 교회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세요?”

잠시 생각하시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어느 교회에서 듣고 마음이 아프셨답니다.

선교사들은 걸어 다니는 청구서야.”선교사님은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를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가 선교사를 걸어 다니는 귀찮은 청구서 정도로 본다면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의 뼈아픈 지적에 수긍이 갑니다.

교회가 열심히 선교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선교사님들을 서럽게 만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먹먹한 뉴욕으로의 귀로였습니다.

 

 

 


우리를 다시 살려 주옵소서

 

내일부터 제9차 한인세계선교대회가 와싱톤에서 열립니다.

4년마다 개최되던 선교대회, 팬데믹으로 6년 만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의 회복, 선교사 후보생들의 발굴과 헌신, 교회를 각성시키는 도전,

그리고 그 시대와 상황에 적절한 선교전략들을 세워 온 선교 대회입니다.

여기 기도 제목들이 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참여하는 우리 모든 교우가 안전하게 오고 가게 하옵소서.

우리 글로리아, 경찬, 교역자 찬양 팀들을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대회를 섬기는 분들에게 강건함과 기쁨을 주옵소서.

그곳에 성령의 뜨거운 불이 임하고,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

우리를 다시 살려 주옵소서

한없이 부족한 담임목사, “그러나의 은혜”(6:9, 고전 15:10)로 채워주옵소서.

 

이제 찬양하며 담대히 나아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땅의 끝까지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주님만 섬기는 나라 되게 하소서

이 땅의 주님 교회 위에/ 하늘의 생기 부어주소서

열방을 치유하는 주 백성/ 주님의 군대를 일으켜 주소서

성령의 새바람/ 이 땅에 불어오소서

주의 영 그 생기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이 땅에 하나님 영광 거하는/ 그런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Next!”

 

우체국 라인에서 기다리는데 창구에서 넥스트!”라는 소리가 들리면,

공항에서 수속하는 직원이 넥스트!”하며 손을 흔들면,

다른 이의 부러움을 뒤로하며 당당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Next가 있기에 즐거운 삶, 기대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부르는 next에도 즐거움과 기대감이 있는데

하나님의 부르시는 next는 어떨까요.

 

하나님이 부르셨던 특새와 VBS를 어제 마쳤는데

오늘 아침에 하나님의 “Next!”라는 소리를 다시 듣고 교회로 달려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계획 없이 “Next!”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시작이다!”라는 말씀을 준비하시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Next가 없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초조한 사람입니다.

Next를 모르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Next!”를 따라가다 보면

내 인생과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절묘하신 계획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Next!”천국으로 들어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날까지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Next!”를 잘 듣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하프타임

 

오늘이 벌써 6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에 6월의 마지막 날이 있고 7월의 첫날도 있습니다.

이번 주를 2022년도 하프타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쉼과 재충전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지난 1818세의 나이로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군의 결선 연주를 보았습니다,

열정의 연주가 격정의 피날레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연주 가운데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악보 따라 쉼을 가졌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영감과 힘이

터져 나는 듯했습니다.

 

정신없이 달렸던 전반부라면

의미 있게 달려야 할 후반부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프타임을 갖는다면

역전과 승리의 후반부를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될 특별 새벽기도회는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영적 하프타임의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행복한 사람들

 

영화 모가디슈는 실화를 바탕으로 소말리아 내전 당시

남북 대사관 직원들과 가족들이 함께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궁지에 몰린 북한 대사가 그 직원과 가족들을 데리고

대한민국 대사관을 찾아와 갈 곳이 없다며 받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을 받아주지만 남한 대사관도 영원히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끝나도 절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에 설교하신 선교사님 부부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25년 동안 사역하셨던 선교지에서 5년 전에 추방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을 저곳 정처 없이 다니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너무나 맑았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정처 없어도

그들이 가고 있는 영원한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았기에

늦은 수요일 밤, 짐을 실은 차를 타고 떠나는

그들은 어린아이들 같이 즐거워했습니다.

 

비록 오늘 갈 곳은 없어도 영원히 갈 곳을 아는 사람들은

이 땅의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이 아깝지 않아요

 

신학교 시절 채플 시간.

선배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번역선교사. 이름도 생소했습니다.

선배님은 평생 성경 번역을 위해 헌신하셨다는 말씀에 숙연해졌습니다.

 

지금 세계에 7,000개 언어가 있는데

신구약 성경이 번역된 것은 700개 언어,

신약은 3,000개 가까운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말은 있어도 글이 없는 언어가 많기에

성경 번역 선교의 길은 아직 멀고 먼 길인 듯합니다.

 

어떤 번역선교사님은

단지 500명만 사용하는 언어의 성경 번역을 위해

평생 살아가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인생이 아깝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내 삶 전체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복음을 들을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은 인생, 가치 있는 인생.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우리도 그런 인생을 살고 있나요?

 

 

 


희망을 심는 사람

 

어제, 멋진 날씨 가운데 선교바자회가 있었습니다.

친교실과 마당에 가득히 펼쳐진 각종 먹거리와 물건들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언어들과

어우러져 장관(壯觀)을 이루었습니다.

 

모든 세대, 모든 회중이

여러 형태로 선교바자회를 섬겼습니다.

저는 그들을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희망을 심는 사람

 

절망을 노래하는 자들은 거리마다 넘칩니다.

탄식하는 소리는 온 세상을 메웁니다.

이 절망과 탄식의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은 희망을 심는 사람입니다.

 

희망을 심는 사람.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담대한 사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함께하는 사람.

바로 그대입니다.

 


안녕, Mark 

 

마크 형제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 곁을 떠난 마크 형제가 주님 품에 안겼음을 알고 있지만,

형제를 많이 그리워할 것입니다.

 

다민족 교회로 가는 길은

힘들 때, 서로 위로하라는 길입니다.

아플 때, 함께 슬퍼하라는 길입니다.

그리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하라는 길입니다.

 

Mark 형제의 아내가 힘들어합니다.

지금 우리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 손 잡으라고.

중국어 예배의 형제자매들이 아파합니다.

지금 우리의 어깨를 내주어야 합니다. 여기 기대라고.

 

오늘은 러시아권 예배 설립 6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함께 천성 가는 길에 맞이한 뜻깊은 6주년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감사의 찬양이 쏟아집니다.

3층 고등부실에서 드려지는 러시아권 예배를 생각하며 미소 짓고,

1층 양순관에서 드려지는 중국어 예배를 기억하며 눈물짓는,

메모리얼 데이를 하루 앞둔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Mark, 안녕. 천국에서 만나요.”


이름 모를 소녀, 이름 모를 소년

 

5월의 창문 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데 문득 그 소녀가 보고 싶습니다.

언제가 그 이름 모를 소녀를 꼭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이 노래에 나오는 소녀는 아니니까요.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그 소녀는 이 소녀입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왕하 5:2)

 

어린 소녀가 이방 땅에서 어려운 삶을 살면서 자신의 어려움에는 침묵했지만

죽어가던 사람을 살려내는 일에는 담대했던 아름다운 이름 모를 소녀.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왕하 5:3)

 

이름 모를 소녀가 이곳 이민 땅에도 있답니다.

자신을 돌보는 일은 뒤로하고 복음을 위해 땀 흘리는 여선교회 회원들.

선교바자회를 둘러보니 마음이 저밉니다.

아 저기,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았던 이름 모를 소년 같은

남선교회 회원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갈 때 가슴이 뜁니다.

  아~~ 이름 모를 소녀여, 이름 모를 소년이여,

  하늘에서는 빛나는 찬란한 이름이여!


끝나는 날이 언제입니까?

 

일부러 들은 것은 아닙니다.

조용한 기도 시간이었기에 또렷이 들렸을 뿐입니다.

지난주 교단총회 새벽기도회 때

옆에서 기도하시던 어느 목사님이 열 번 가까이

끝나는 날이 언제입니까?”라고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셨습니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목사님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갑자기 저의 기도는 어디로 가고 그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는 날이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 아니라

끝나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담은 기도이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끝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13)

끝나는 날이 없다면 결코 이렇게 말씀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으시기 전까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견디며 충성해야 합니다.

 

끝나는 날이 언제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두 분 어머니 전상서

 

낳아 주신 어머니께

어머니, 저를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많이 아프시다가 천국 가신 것, 기억납니다.

집이 아니라 병원에 어른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저는 뒤에서 어른들이 우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슬픔이 뭔지 모른 던 철없는 아이에게 아픔으로 기억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국이는 어떡하고?”

누군가 외쳤던 소리가 아직도 제 귀에 남아 있습니다.

성국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사가 되었어요.

천국가서 어머니 뵐 때 부끄러운 아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너무 보고 싶고 어머니 품에 꼭 안기고 싶어요.

 

길러 주신 어머니께

어머니, 성국이여요. 천국으로 처음 띄우는 편지 같아요.

자신의 입는 것도 먹는 것도 관심이 없으시고

오직 부족한 아들이 바른 목사 되기만을 기도하신 어머니.

어머니는 하나님이 제게 보내주신 크고 아름다운 선물.

드시라 해도 마다하시고 제가 잘 먹는 것만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시던 어머니.

어머니가 즐겁게 방문하셨던 퀸즈장로교회를 기쁘게 섬기고 있어요.

저 때문에 낳실 제 괴로움보다 항상 더 큰 아픔을 겪으시며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이라는

노래가 너무 어울리시는 어머니.

어머니, 저를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사랑합니다.

 

 

낳아 주신 어머니, 길러 주신 어머니

어제는 두 분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며 여러 차례 눈물 지었어요.

 

 


한 가지는 말해야 할 텐데

 

어제 아침 한국에서 오신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대표회장 한영훈 목사님께서

뉴욕의 여러 연합회 목사님들과 함께 우리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와 장영춘 목사님을 잘 알고 계셨고 뉴욕 방문길에

꼭 퀸즈장로교회를 방문하고 싶으셨답니다

 

연세는 78세이신데 매우 건강해 보이셨습니다.

수많은 사역을 힘 있고 놀랍게 해오신 분입니다.

연륜과 경험에서 묻어나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울림이 있으셨습니다.

그중에 이런 말씀을 진심 어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가 컸습니다.

분에 넘치는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는데 훗날 하나님을 뵐 때

나는 너를 위해 아낌없이 부어주었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한 가지는 말해야 할 텐데 그것이 제겐 없습니다.”

 

속으로 목사님은 많이 있으셔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요 제가 가진 도시락 전부를 드렸어요.”

오병이어의 그 어린이는 당당히 말씀드릴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는데

제게는 하나님께 말씀드릴 그 한 가지를 찾을 수 없어

 

 

 

은혜의 하나님께는 너무 죄송하고, 멋진 어린이에게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늦기 전에

 

이름 모를 시인의 절규 같은 시입니다.

 

나의 삶이 이 세상에서 끝날 때 최고급의 꽃을 받는 것보다

친구의 정원에서 잘라 온 한 송이의 장미라도 지금 받고 싶습니다.

나의 심장이 멈추고 내 생명이 끊어졌을 때 많은 찬사를 받는 것보다

한 마디의 친절하고 상냥한 말을 지금 받고 싶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나의 관 앞에서 흘리는 눈물보다

나의 진실한 친구들로부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금 받고 싶습니다.

 

지금 나의 옅은 미소를,

지금 나의 꽃 한 송이를,

지금 나의 따듯한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 있을 것입니다.

 

늦기 전에

그 미소를, 그 꽃을, 그 한 마디를 전해준다면

그는 고독과 절망을 멈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을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봄날이 이렇게 가듯

기회도 이렇게 갈 것입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는 기회를 꼭 잡아요.

옅은 미소, 꽃 한 송이, 혹은 따듯한 한마디 말이면 충분할 수 있답니다.

 

 

 

 

 

 

 

 

 

 


시몬, 왜 숨어요?

 

18854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친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언더우드 선교사님과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어두움에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시몬 베드로는 아펜젤러와 다른 길로 갔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부활의 목격자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평범한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몬은 자기의 수치 때문에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기보단 숨으려 했습니다.

 

부활의 목격자는 숨을 것이 아니라 나타나야 합니다.

부활은 어둠에 비치는 빛입니다.

그래서 더 짙은 어두움을 향해 가는 시몬에게 묻는 것입니다.

시몬, 왜 숨어요?

 

 

 


주의 발자취를 따라서

 

힘들지 않니?”

어머니가 아들에게 애처롭게 물었습니다.

며느리가 오랫동안 병이 들어 아들이 고생하는 것을 본 어머니의 질문이었습니다.

괜찮아요.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플 때 잘하시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 병간호를 오랫동안 묵묵히 잘했었습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보고 예수님이 생각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절절히 와닿을 시간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 (벧전 2:21)

 

결단의 시간입니다

고난의 예수님을 따르기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참고 걸으셨던 예수님의 그 모습 그대로 닮아가며 따라가시겠습니까?

 

 


떡 두 개와 1,000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주일이면 그 아이의 손엔 어머니가 들려준 헌금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교회 가는 길에 떡 장사 아주머니들이 펴놓은 떡을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헌금 바구니가 앞에 왔을 때 헌금을 드리는 시늉만 했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헌금을 가지고 떡 두 개를 맛있게 사 먹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 이제 80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그때 헌금으로 사 먹은 떡 두 개가 지금까지 부끄럽고 죄스러운 것입니다.

 

어느 낭떠러지 사이를 낡은 다리로 건너야 할 사람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다리를 무사히 건너면 감사헌금 1,000불 드리겠습니다.”

건너다보니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기도를 조정했습니다. “하나님, 헌금은 500불입니다.”

다리 끝에 다다를 때 기도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200불을 확실히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며 낡은 다리가 심하게 흔들거리는 것입니다.

그는 급하게 원래대로 기도했습니다. ”아이구 하나님, 왜 그러세요. 1,000불입니다.“

 

앞의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고, 둘째 이야기는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 아이처럼 하나님의 것을 훔쳐 사 먹고 평생 회개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도,

 

그 사람처럼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마음대로 바꾸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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